메뉴 바로가기 검색 및 카테고리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한빛출판네트워크

한빛랩스 - 지식에 가능성을 머지하다 / 강의 콘텐츠 무료로 수강하시고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

IT/모바일

알프스에서 네트워킹을

한빛미디어

|

2001-03-20

|

by HANBIT

9,510

내가 최근에 지은 『Windows 2000 Administration in a Nutshell』의 교정을 본 후에, 나는 내가 한 일에 스스로 도취되었다. 나는 스위스 저마트에 있는 호텔 2층에서 묵었는데, 거기서 창 밖을 꿈꾸는 것 같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는 해가 내던지는 황금빛 그림자가 마터호른(Matterhorn: Pennine Alps 중의 높은 봉우리)의 황량한 표면을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동료인 밥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나 결심했어. 우리는 그 일을 할거야." 내 말의 어조가 좀 이상했는지, 밥은 랩탑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는 내 눈에 서려있는 냉기 서린 결심을 바라보았다. "진심이 아니겠지." "아니, 정말이야. 우리는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밥은 "그러다가 우린 둘 다 죽을 거야. 난 절대로 널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자려고 했지만, 그 사업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휴가를 떠났던 날, 저맷에 있는 스위스 연방 철도 회사(SBB: Schweizerische Bundesbahnen)에서는, 우리에게 뭔가 일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회사에서는 우리가 윈도우 2000 네트워크를 마터호른 산 꼭대기에서 몇 백 미터 아래에 새로 지은 기상 관측소에 조그마한 윈도우 2000 네트워크를 설치해 주기를 바랬다. 나는 이 일을 하면 회사 경비로 휴가비용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우리가 겪을 어려움과 인건비를 생각했더라면, 다른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일 운명에 도전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아들이며, 우유와 치즈를 많이 생산하는 알프스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새벽이 되기 전에 일어났다.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했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방법은, 기지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관측소 사이에 무선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둘이 산의 반대쪽 등성이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계획은 실행일 불가능 했다. 나는 그 다음으로 위성 네트워킹을 생각했다. 하지만, 위쪽에 있는 관측소에서 살았던 기상학자는 전에는 유닉스를 썼으며, 텔넷 세션을 운영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위성을 사용하면, 컴퓨터를 사용할 때에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이었다. 나는 마침내 10베이스2 씬넷 케이블을 저마트에서 산 위의 관측소까지 하나 깔기로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스위스에서는 무엇인가를(특히 치즈를) 긴급하게 요청하면 어떤 것이든지 풍부하게 공급해 주었다. 나는 오후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스텝과 준비물의 목록을 작성했다. 리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프로젝트 스텝:
  • 팀장인 나
  • 나의 동료 밥(Bob)
  • 물건을 제 시간에 조달해 줄 스위스 철도 차장 3명
  • 우리를 아침에 깨워줄 호텔 주인
  • 치즈를 가져다 줄 13명의 젖 짜는 여자
  • 롤 화장지 반개를 들고 다니는 화장실 종업원(우리가 먹어댈 치즈를 생각해 보라)
  • 6명의 통역사, 각각은 스위스에서 사용하는 2가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4명이 각각의 2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면, 4 x 3 / 2 =6 이다.)
  • 카톨릭 신부 한 명과 개신교 목사 한 명
  • 만일을 대비한 12명의 튼튼한 산악인
운송 수단:
  • 방울을 단 15마리의 스위스 소
합계: 44명, 소 15마리. 총계: 59 장비: 나는 스위스 연방 철도 회사에게 나의 요구를 적은 목록을 가지고 갔다. 그 회사에서는 내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오후 6시 42분까지 준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는, 호텔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들은 6시 43분에 사과를 몹시 하면서 장비를 가지고 왔다. 몇 가지 지시를 한 후에,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그렇게 좋은 경치는 본 적이 없었다. 59명의 스텝은 서로 안전하게 동축 케이블로 몸을 묶고는 거의 500미터가 넘는 길이로 늘어섰다. 나는 이렇게 거대한 팀을 이끈다는 데에 자랑스러워하면서, 무리의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았다. 4시 15분에 나는 산에 올라가라는 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모인 지역 주민의 격려를 받으며 도시를 떠났다. 소들도 즐겁게 목에 걸린 방울을 울리면서 대답했다. 모든 장면이 더할 나위 없이 멋졌다.

우리는 어깨에 서버를 지고서 계곡을 가로지르고 산에서 흐르는 차가운 냇물을 건넜다. (산악인들은 젖 짜는 아가씨들을 데리고 갔다.) 아침 7시 반에, 우리는 아침(치즈)을 먹으려고 산기슭에서 멈추었다. 아침식사 후에, 우리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단층 지괴에 반사된 아침 햇살에 마음이 즐거워졌다. 나는 가슴이 벅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기온이 떨어졌고, 음침한 안개가 끼었다. 케이블이 무거워서 우리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씬넷보다 캣 5(Cat 5)를 사용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했다. 우리는 몹시 가파른 경사를 올라갔고, 젖 짜는 아가씨들은 힘들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나는 젖 짜는 아가씨들의 줄을 풀어서, 소가 그들을 끌고 갈 수 있도록 소의 뒤에 연결해 주었다. 그들의 옷에 흙이 좀 묻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어려움은 더 심해졌다. 네 명의 가이드는 오후에 일행을 멈추게 하고는, 서로 쑥덕거렸다. 사방을 둘러봤는데, 가이드 중에 아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나는 "위"가 어딘지 아는 가이드 한 명을 더 데리고 왔으면 하는 후회를 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나는 랩탑을 씬넷 케이블 끝에 연결해서 베이스 스테이션에 신호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불행히도, 내 PCM 카드는 UTP 커넥션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위스 아미 칼을 꺼내서 UTP와 씬넷을 연결하는 어댑터로 둘을 연결했다. (스위스 아미 칼은 어느 곳에서나 유용했다.) 나는 통역가들 중 한 명에게 스위스 연방 철도 회사의 URL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 사람은 통역해서 다른 통역가에게 물었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그냥 한 번 추측해 보기로 했다. 아마 www.sbb.com일 것 같았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호텔 주인이 치즈 한 조각을 건네주었고, 나는 거기에 영감을 얻어서 www.sbb.ch라고 주소를 입력했다. "ch"는 치즈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도메인이었다. 불행히도, 사이트가 다운되어 있었다. 스위스 철도 회사도 별 수 없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은 에드워드 휨퍼가 1865년에 처음으로 마터호른 산에 오를 때만큼이나 굉장한 것이라고 스텝들을 격려했다. 가이드가 그 때 산에 오른 7명중에 4명이 등반 중에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는 젖소를 데리고 왔으니까 그 때보다 장비를 더 잘 하고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날씨는 분명히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쉴 곳이 있나 둘러보고, 벼랑에서 약간 아래에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얼음으로 된 다리가 동굴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뾰족한 돌들이 800피트 밑에 마치 날카로운 이빨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산악인들에게 서버를 가지고 먼저 가라고 하였다. 한 명이 미끄러지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놀랐다. 하지만 그 사람은 튼튼해서 가까스로 암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붙잡았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운이 좋았지만, 서버는 그렇지 않았다. 그 사람은 서버를 놓쳤고, 그것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4~5번 바위에 부딪친 후에 바닥에 있는 바위에 부딪칠 때에는 조각이 나 있었다. 서버를 운반하던 사람은 윈도우 NT 대신에 윈도우 2000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코드를 몇백만 줄 더 추가해서 기계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고, 그래서 나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리눅스에 네트워크를 설치하기로 했더라면 일이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얼음으로 된 다리가 이 사건으로 더 약해졌을 것이고, 이 때문에 상황이 심각해졌다. 나는 우리가 네트워크 케이블을 라펠(2중의 자일로 암벽을 타고 내려가는 방법)처럼 사용하여 아래에 있는 동굴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라펠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이 프로토콜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계획을 실행했다. 다행히도 소가 코에 고리를 차고 있어서 이 일을 하기가 더 쉬웠다. 우리는 해가 진 후에 동굴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한데 모였다. 사람들은 점점 의기소침해졌고, 나는 우리가 밤에 살아남으려면 무언가 과감한 수단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두 명의 목사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때문에 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침묵 기도를 해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Windows 2000 Administration in a Nutshell』책을 꺼내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책에서 찾아보려고 하였다. 밥이 "이봐, 나 너에게 물어볼 게 있어. 만약 네가 이 책을 다 쓴거라면, 책을 썼다는 영예가 모두 너의 상관 미치 툴로치에게 돌아간거지?"하고 물었다. "그건 팀 오라일리의 생각이야. 그 사람은 툴로치같이 유명한 사람이 책을 썼다고 하면 책이 더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대리인이 필요할 것 같아."라고 나는 슬프게 대답했다. 나는 추위와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불쌍한 우리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동굴은 작았고, 화장실로 쓸 공간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치즈는 많았다. 나는 다시 책을 보려고 돌아앉고서 내가 책에서 혹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펼쳐 보았다. 3장과 4장은 터미널 서비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읽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마지막"이라는 말을 동료들에게 할 수는 없었다. 7장은 커멘트 라인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위기에 처했을 때의 통제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명령을 할만큼 마음이 굳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다. 나는 20권의 책을 다 풀고 페이지를 하나씩 찢어서 불을 필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내 불쌍한 책이 타는 것을 보니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내가 보낸 밤 중에 제일 긴 것 같이 느껴졌다. 마스카라가 번졌다.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책은 마지막 한 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고, 우리는 곧 희망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손에 있는 찢어진 페이지를 보고는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부분에서는 윈도우 2000 CD를 설치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아.. CD! 우리는 정보 기술 전문가이며, 네트워크 분할 점이나 디스크 이미징, 원거리 설치 서비스 등 항상 더 쉽고 다루기 쉬운 배치 방법을 찾았는데 이러한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정말 바보 같았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CD는 우리가 하루를 허비하지 않게 하고, 그 상황에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구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나는 가방을 열고는, 거꾸로 들고 모든 내용물을 다 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CD를 샅샅이 찾았다. 나는 벼랑 끝에 서서, CD를 태양 쪽으로 치켜들어서 아래에 있는 저마트 기지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 그것을 거울같이 사용하였다. 몇 분 후에, 그들은 응답의 사인을 보냈다. 그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철도를 짓고 있다고 했으며, 3시간 27분 안에 우리를 구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동료들에게 모든 것이 3시간 27분 안에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하고, 남은 시간동안 스위스 아미 칼로 마지막 남은 치즈에 이 이야기를 새겨 넣었다. 구조 노력은 성공적이었고, 우리는 어려움을 많이 겪은 후에 그 날 늦게 별장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처음에 계획했던 굉장한 작업은 결국 실패했지만, 스위스 연방 철도 회사는 우리에게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철도 이용권과 액자에 든 마터호른 산의 그림을 주는 등 후하게 사례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우리 모험을 적어 넣은 마지막 치즈 조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나는 그것을 씬넷에 묶어서 목걸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목에 차고 있다. 그 목걸이는 내가 마터호른에서의 원정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다. 내가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할 게 없다.
TAG :
댓글 입력
자료실

최근 본 상품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