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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모바일

원숭이 신발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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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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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8,506

by 권원상(zooba@hanmail.net) 아침에 받은 메일 중에는 3D 브라우저가 또 발표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무려 5개의 화면으로 웹을 서핑할 수 있다는 이 브라우저는 사용자를 웹의 중심에 놓는다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다음 링크를 누르면 도대체 화면이 5개인 브라우저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대충이나마 볼 수 있다. 3-D browser drops users in center of the Web - From USAToday.com IMF 이후에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왔던 단어를 나열하라면, "거품"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벤처 거품", "거품을 걷어내자", "주가 거품" 등... 그런데 최근 전국을 휩쓸고 있는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프트웨어 사용"에도 예외 없이 "거품"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단속과 관련해서는 SPC라는 단체의 정체에서부터, 한미 통상 마찰과 관련되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 벤처기업들이 더 타격이 크다, 단속에 일관성이 없다 등의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오늘 아침 받은 메일에는 SPC에 다니는 사람의 디렉토리에 들어 있는 파일 목록이 그대로 실려 있고, 조사 단체가 이 모양인데 하며 도덕성을 의심하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왜 MS 워드를 써야 하는지, 왜 Visual C++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는 회사에서 단속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컴퓨터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깔고 나니, 웹 서핑 외에는 도대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울분(^^)이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회사에서 구매하기 전까지는 설치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화를 낼 일만은 아니었다. 하루에 워드를 얼마나 쓰는지, 비주얼 베이직을 얼마나 쓰는지 생각해 보니, 잘만 하면 없어도 살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주로 ASP와 컴포넌트를 사용하는 웹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데, ASP야 노트패드만 있어도 되고, 컴포넌트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비주얼 베이직도 노상 붙잡고 있는 편은 아닌데다가, VBScript 5.0부터 지원하는 클래스를 이용하여 ASP에서 대충 만들어 놓고 나중에 다른 사람 컴퓨터에서 컴포넌트를 만들어 내면 될 것 같았다. 그 밖에 워드 문서야 되도록이면 안 만들면 되고(워드 패드를 쓴다거나), 좋아 라고 쓰던 터미널 서버 기능은 VNC로 대체하고, WinZip은 PowerArchive(혹은 ALZip)로, ACDSee는 ALSee로, FTP는 SunnyFTP라는 공짜로 바꿔 놓았다. 에디터의 경우는 도저히 노트패드로 안될 것 같아서 UltraEdit 구매하기로 하고, 워드는 회사에서 일괄 구매 후 지급을 하기로 했다. 이것 저것 프리웨어와 최소한의 소프트웨어만을 깔아 놓고 나니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고 옹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대로 살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에 대한 논란은 올해 끝나고 말 것이 아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작년에도 이맘때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 졌었고, 올해도 그렇고, 다시 내년에도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2000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워드에 있는 기능의 10%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들의 소프트웨어 사용 행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왜 워드2000이 필요한지, 그리고 워드2000을 어느 정도 잘 활용할 수 있을지(최소한 들인 돈만큼이라도)를 고민해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글 앞머리에 소개한 3D 브라우저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거 어디에 쓴데?"하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워드2000을 사용하는 당신에게도 "그렇게 쓰려면 뭣하러 워드2000 쓰냐?"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이런게 "거품"이 아닐까? 소프트웨어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힘이 센 까닭에 앞으로 소프트웨어를 사지 않고는 기업 활동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러면 선택은 하나다. (사람들의 주장대로) 뼈빠지게 돈을 벌어 남(MS나 Adobe) 좋은 일을 하거나, 불편해도 자신에게 맞는 꼭 필요한 기능을 가진 최소한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거나 복제, 배포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GPL을 따르는 소프트웨어를 쓰는 수밖에... "원숭이 신발"이라는 동화가 있다. 원숭이들이 사는 어떤 마을에 신발 장수가 들어 왔다. 신발을 처음 보는 원숭이들은 신발을 공짜로 준다는 이야기에 우르르 몰려들어 신발을 한 켤레씩 받아갔다. 빨갛고 파란 예쁜 실로 수를 놓은 데다, 밑창이 고무라 나무를 오르기도 훨씬 쉬워졌다. 신발 장수는 밑창이 다 헤질 때쯤이면 나타나서 신발을 주고 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돌아온 신발 장수는 "이제부터는 신발을 받아 가려면 도토리를 가져 와라"라고 요구했고, 신발 덕분에 발바닥의 굳은 살이 모두 풀린 원숭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토리"를 가져다가 신발 장수에게 주어야 했다. 신발 장수가 올 때마다 도토리의 숫자는 늘어만 갔고, 결국 원숭이들은 "신발"을 신고 신발 장수에게 바쳐야할 도토리를 따러 돌아다니느라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신발값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리는 원숭이들이 되어 가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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